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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국치 110년 및 제101주년 삼일절 기념 특별기획전

전시 상태
종료
전시기간
2020-03-01
조회수
168

ㅇ전  시  명 : 국치 110년 한국 강제병합 조약자료전

ㅇ전시 기간 : 2020. 2. 28(금) ~ 2020. 7. 19(일)

ㅇ전시 장소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의열관(석주홀)

 

 

조약(條約)으로 보는 근대 한·일관계사

- '한국병합' 불법성의 증거들 -

 

근대 한·일 관계는 조약 체결로 시작하였다. 1876년 2월에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여 상호 독립국으로서 우호관계를 유지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법을 평화공존의 장치라기보다는 약육강식의 덫으로 인식하여, 특히 한국과의 관계에서 준법과 불법의 선을 마음대로 넘나들었다. 한반도에 대한 청나라淸國의 영향을 밀어내고 일본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단계에서는 일본이 획득한 것들에 대한 법적 보장을 튼튼히 해두기 위해 조약의 요건 갖추기를 강요하다시피 하였다. 반면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켜 무력으로 한국의 국권을 빼앗으려는 단계에서는 국제법이나 국제관습을 유린하였다.

 

국제법적으로 조약은 다루는 사안의 비중에 따라 ‘정식’과 ‘약식’ 두 가지가 있었다. 정식조약은 ‘Treaty’ ‘Convention’으로 국교를 처음 수립하는 수호통상조약修好通商條約이나 국교 수립 후에 국권 변동에 저촉되는 문제를 다룰 때 취하는 형식이다. 이때는 세 가지 요건, 즉 국가 원수가 협상 대표를 선정하여 전권全權을 위임하는 위임장, 양국 전권 대표가 만나서 협상한 결과를 정리하고 이에 기명날인한 조약문, 이에 대한 국가 원수의 뜻을 밝히는 비준서批准書가 반드시 갖추어져야 효력을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약식은 국교가 수립된 상태에서 국권에 저촉되지 않는 사항을 다룰 때 취하는 형식으로 ‘Agreement’ ‘Arrangement’ ‘Protocol’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약식 조약은 양국의 외무外務 책임자, 예컨대 외부대신外部大臣이나 주재공사駐在公使가 협상에 임하여 정부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사실을 조약문에 명기하고 국가원수의 비준을 받는 절차는 생략하였다.

 

일본의 명치 정부가 조선, 대한제국에 요구한 조약 가운데 원칙 또는 관례를 지킨 것은 국교 수립 초기의 3개 조약, 즉 ‘조일수호조규(1876)’및 이에 부속하는 조약들, ‘제물포조약(1882)’ ‘한성조약(1885)’등 뿐이다. 이후에 요구된 조약들은 국권에 저촉되는 사안인데도 모두 약식으로 처리되었다. ‘제물포조약’과 ‘한성조약’에서는 조선의 허물을 응징하기 위해 국왕이 사죄의 뜻을 표하는 국서國書를 요구하기까지 한 반면에, 이후 국권 탈취를 목적으로 한 조약에서는 군주의 뜻을 밝히는 비준서 발부의 절차를 아예 빼버리고 약식 조약의 형식을 취하고 나중에 이를 정식 조약처럼 가장하려고 하였다. 최후의 ‘한국병합조약’은 정식 조약으로서 모든 요건을 다 갖추려고 하였지만, 비준서에 해당하는 ‘칙유勅諭’에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이름자를 쓰는 친서親署 절차를 거부하였다. 러일전쟁 후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강요한 국권 관련 5개 조약에는 한국 황제가 수락하는 의사 표시가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 국권의 일본 이양은 이처럼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합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하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