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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CE FIGURE

인물

’15. 11월의 독립운동가 이면주

작성일 2015.11.03 조회 1,780 작성자 학예연구부

본문

‘15. 11월의 독립운동가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선비 이면주李冕宙

 

 

□ 공훈개요

 • 성 명 : 계은桂隱 이면주李冕宙

 • 생몰연월일 : 1827. 7. 21 ~ 1910. 10. 19.

 • 주요 공적

   1850년 증광문과 병과 급제

   1864년 정언사직 겸 시국상소

   1865년 부수찬

   1866년 부교리ㆍ좌부승지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의

   1879년 병조참의에 임명

   1902년 가선대부 종정원경宗正院卿에 임명되었으나 사직상소

   1905년 을사늑약에 반대 상소 및 을사 5적 처단 상소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음독 자결 순국

 • 훈격

   건국훈장 독립장(1962년)

 

 

□ 공훈설명

  이면주는 경북 봉화군 법전면 내곡리奈谷里 출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우錫宇, 자는 윤래允來, 호는 계은桂隱 또는 하계霞溪였다. 그는 조선왕조 제3대 태종의 아들 온양군溫陽君의 후손이며, 이치두李致斗의 아들로 1827년 7월 21일(음 6. 23)에 태어났다. 이면주의 스승은 김숙金熽이다.

  그는 1850년(24세) 증광문과增廣文科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순강원수봉관順康院守奉官이 되었다. 그 뒤로 성균관 전적典籍ㆍ사헌부 지평持平ㆍ이조좌랑左郞을 거친 뒤, 1860년 12월에는 경남 남해안의 교통로를 책임지는 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이 되었다.

이면주는 1862년 모함에 빠져 무주로 귀양 갔다가, 이듬해 특사로 풀려났다. 그리고 1864년에는 사간원 정언正言 사직과 함께 시국의 그릇됨을 상소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1864년에 병조 정랑正郞ㆍ사헌부 장령掌令, 이듬해 홍문관 부수찬副修撰, 1866년에는 홍문관 부교리副校理ㆍ승정원 좌부승지겸 경연 참찬관經筵 參贊官, 1879년 병조 참의, 1891년 부승지 등에 임명 되었으나, 병조참의 외에는 거의 응하지 않았다.

  1895년(70세) 11월 도사都事 류도성柳道性, 도사 김도화金道和, 승지 김흥락金興洛이 안동부에서 창의倡義를 위해 모였다. 이때 김도화가 그에게 의병을 도와 이끌어 줄 것을 청했으나 사양하였다. 그리고 1902년에는 가선대부 종정원경嘉善大夫宗正院卿에 승직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리고 물러나 조용히 은거 생활을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어 외교권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자, 이면주는 나라를 올바로 부지하기 위해 「을사8조소乙巳八條疏」를 올렸다. 그 내용은 (1) 임금이 정사를 바르게 할 것, (2) 백성을 사랑할 것, (3) 기강을 바로 세울 것, (4) 사치를 금지할 것, (5) 수령을 골라 뽑을 것, (6) 환관을 배척할 것, (7) 세신을 기용할 것, (8) 충성스런 간언을 받아들일 것 등을 골자로 하였다. 이어서 그는 「청참5적소請斬五賊疎」를 올려, 5백년 종사와 억만 생령이 위태롭게 되었으니 조약에 참여한 다섯 역적 대신들을 극형에 처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대세의 물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1910년 경술의 국치로 나라가 망했다. 이면주 자신은 왕족으로써 관직을 지낸 사대부였다. 그는 앞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예안 청구동에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가 단식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예안은 봉화의 바로 이웃이라 소식도 곧바로 전해졌다. 봉화에서도 이만도를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이 여럿 있었으므로 그곳의 분위기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15일(음 9. 13) 향산 이만도가 순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뿐 만 아니라 하계마을에서 이중언李中彦이 단식에 들어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면주는 자결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는 10월 17일(음 9. 15) 밤에 독약을 마시고 10월 19일(음 9. 17) 아침에 똑바로 앉은 채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3세였다. 이면주의 순국은 금산군수錦山郡守 홍범식洪範植, 판서 김석진金奭鎭, 진사 황현黃玹, 승지承旨 이만도李晩燾, 이중언李中彦. 정언正言 정재건鄭在健, 의관議官 송익면宋益勉, 감역監役 김지수金智洙, 유생 박병하朴炳夏, 송주면宋宙勉, 권용하權龍河, 류도발柳道發, 이현섭李鉉燮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순국열사와 함께 순국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해 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드렸다.

 

*담당부서 및 담당자:학예연구부 한준호/이메일:pantagom@hanmail.net/연락처:054-823-1555(FAX.054-823-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