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화

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김도화

작성일 2014.12.17 조회 632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김도화
한자
金道和
생존기간
1825.9.6~1912.8.7
출생지
일직면 귀미리
활동분야
의병항쟁
훈격
애국장(90)

본문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달민達民. 호는 척암拓菴. 출신지는 일직면一直面 귀미동龜尾洞(현 일직면 귀미리). 1895년에 전해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김도화는 김흥락金興洛·류지호柳止鎬 등과 더불어 안동의진 결성을 결의하고,「안동통문」작성에 참여하였다. 1896년 1월 20일, 안동의진이 구성될 때, 척암은 여러 지도자들과 협의하여 봉화군 유곡(酉谷:닭실) 출신 권세연權世淵을 의병장으로 뽑았다. 김도화는 3월 13일 안동의진의 대장으로 천거되고, 3월 14일 대장에 취임하였으며, 이어서 류난영柳蘭榮을 도총都摠에, 김흥락과 류도성을 지휘장으로 선임하는 등 조직을 정비하였다. 또한 의병을 일으킨 뜻을 왕에게 아뢰는「창의진정소倡義陳情疏」를 올리고, 각지로 격문을 발송하는 한편 인근지역에도 의병을 모으는 소모관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후 척암은 태봉의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기 위해 권문팔權文八을 대표로 삼아 안동의병 250명을 파견하였다. 3월 26일 예천에서 안동지역의 6개 의진과 제천의 호좌의진은 연합전투를 다짐하였고, 3월 29일 태봉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격렬한 공방전 끝에 태봉 함락은 실패로 돌아갔다. 태봉전투의 패배 이후, 김도화는 다시 병력을 보충하여 의진을 정비하고 전투 준비를 갖추었다. 하지만 9월 11일(음 8.6)에 대대장大隊長 이겸제李兼齊가 병정 100여 명을 이끌고 안동부에 도착하면서 의병투쟁은 일단락 된다. 묘는 현재 안동시 송천동 안동대학교 후문 근처에 있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 참고자료

  『척암집』

  『을미의병일기』(이긍연)

  『의병항쟁사』

  『독립운동사』1권,『독립운동사자료집』1·2집,『한국독립사』하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