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환

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김연환

작성일 2014.12.17 조회 480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김연환 / 김사기 / 김기중
한자
金璉煥 / 金鍊煥 / 金寫奇 / 金器重
생존기간
1879.10.29~1947.12.20
출생지
서후면 금계리
활동분야
임시정부
훈격
애족장(90)

본문

본관은 의성義城. 이명은 김연환金鍊煥·김사기金寫奇·김기중金器重. 출신지는 서후면西後面 금계리金溪里. 김양모金瀁模의 아들인 김연환은 1912년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시奉天市 소남문小南門에 근거지를 마련한 후 천성여관天城旅館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그가 주로 맡은 일은 국내와의 연락담당이었고, 폭탄을 만주 일대와 국내에 공급하여 의열투쟁에 사용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1919년 9월 15일 천성여관에서 비밀리에 제조하던 폭탄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경찰로부터 국내와 만주 등지에 폭탄을 제공한 혐의자로 수배 당했다. 이에 그는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가담, 자금모집을 담당하였다. 1920년 1월경 김연환은 김창숙과 김법金法을 만나 모금계획을 수립한 후 국내로 잠입하였다. 대구에 도착한 그는 영양 출신 권태일權泰馹에게 임시정부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독립운동에 가담하라고 권유하였다. 또 서건수徐健洙라는 인물도 포섭하여 임시정부에 원조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어서 1920년 2월 27일 상주 성하리에 사는 류경원柳慶元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만난 정재룡鄭在龍·강원석姜原錫에게 임시정부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청하다가, 1920년 2월 29일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옥 후 다시 만주로 건너간 그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무관학교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활동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 참고자료

  「판결문」(1920.6.19, 대구지방법원)

  『고등경찰요사』

  『독립운동사자료집』5·9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