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진

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김원진

작성일 2014.12.17 조회 605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김원진
한자
金元鎭
생존기간
1890.09.04~1945.09.13
출생지
안막동
활동분야
국내항일

본문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선약善若.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안막동安幕洞(현 안막동). 김원진은 1912년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를 졸업하고, 4월 1일에 안동공립보통학교安東公立普通學校 교사, 1913년 10월 의성공립보통학교義城公立普通學校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1914년 7월에는 함경남도 정평定平 군청에서, 10월에는 단천군端川郡으로 옮겨 서기로 근무하다가, 1915년 7월 면직되었고, 이후 안동군청으로 옮겨 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안동면 시위를 계획·추진하다가, 그는 시위 하루 전날인 3월 12일에 예비검속을 당해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4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복역하였다. 이후 그는 동아일보 안동지국 기자로 활동하며, 안동청년회安東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가 가입한 안동청년회는 1920년 5월 창립하여 지역의 교육활동을 담당하였는데, 김원진은 1920년 8월 24일 안동청년회 주관으로 개최된 강연회에서 ‘사랑과 교육’이란 주제로 강연하였다. 또한 그는 1920년 9월 23일 창립된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1년 7월 제2회 총회에서 간사로 선출되었으며, 1923년 안동물산장려회가 창립되자 여기에도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화성회火星會와 안동기우단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김원진은 같은 해 예천형평사 습격사건이 일어나자 화성회 대표로 연합회 결성에 참여하고,《동아일보》에 사건 전모를 게재하였다. 이로인해 예천형평사 습격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김석희金碩熙(예천청년회장)와 장수암張守岩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고, 이에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1927년 8월 신간회 안동지회가 창립되자 여기에 참여하여, 1928년 1월 대표위원과 1929년 1월 간사 및 대표회원으로 각각 선출되었다.

 

 

• 참고자료

 「판결문」(1919.04.17, 대구복심법원)

 「판결문」(1919.05.15, 고등법원)

 「수형인명부」(1건)/ 「집행원부」(2건)/ 「형사사건부」(2건)

 『독립운동사』 3

 『독립운동사자료집』 5집

 『독립운동사자료집』 6집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사』

 《동아일보》 1920.09.15, 1921.07.25, 1925.08.06, 1926.01.29, 04.09, 08.24, 1927.09.09

 《조선일보》 1928.01.21, 02.06, 1929.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