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

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김현동

작성일 2014.12.17 조회 431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김현동
한자
金賢東
생존기간
1876.12.24~1927.7.10
출생지
서후면 금계리
활동분야
만주방면
훈격
애족장(90)

본문

본관은 의성義城. 본관 의성義城을 이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는 회문會文. 호는 의정義正. 출신지는 서후면西後面 금계리金溪里. 1908년 예천군 유천면 송전동 명당골로 이주하였다. 김현동은 1907년 이강년의진의 소모장이던 류시연을 따라 수안보로 가서 이강년의진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강년이 체포되자 그는 잔존부대와 함께 백우白愚 김상태의진에 가담하여 순흥 상단곡上丹谷 전투에 참가했다고 전해진다. 김상태의진에서 김현동은 주로 척후병으로 활동하였으며, 영월·정선·영천(영주)·예천 등지에서 벌어진 의병항쟁에 참가하였다. 이후 그는 1921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군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의용단義勇團에 참가하여 경북단 간사로 활약하였다. 1922년 6월 서로군정서 독판 이계원李啓元(이상룡)이 국내로 파견한 김찬규金燦奎(영주 이산면 석포리)가 체포됨으로 인해 그 전모가 드러났는데, 당시 의용단의 경북단장은 신태식申泰植이고, 경남단장은 김찬규였다. 이 단체에서 경북단 간사로 군자금을 모집하던 김현동은 1922년 12월 18일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23년 9월에 출옥하였다. 묘는 대전현충원에 있다.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 참고자료

  「김현동선생약사」

  『고등경찰요사』

  『독립운동사자료집』10집

  「예심종결결정서」(1923.9.30, 대구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