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류시연
- 성명
- 류시연
- 한자
- 柳時淵
- 생존기간
- 1872~1914.1.29
- 출생지
- 임동면 수곡리
- 활동분야
- 의병항쟁
- 훈격
- 독립장(62)
본문
본관은 전주全州. 이명은 류시영柳時榮·류시종柳時宗·류시연柳時然·류시영柳時永·류승일柳承一. 자는 박여璞汝·응만應萬. 호는 성남星南. 출신지는 임동면臨東面 수곡리水谷里(한들). 류시연은 한말 일제에 항거하여 전기부터 중기·후기에 걸쳐서 의병항쟁을 한 인물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 이후 권세연을 대장으로 하는 1차 안동의진이 결성되던 무렵, 류시연은 김도현金道鉉과 함께 1896년 2월 17일(음 1.5)에 청량산에서 의병결성을 논의하였고, 안동의진 결성 소식을 듣자 여기에 참가하여 소모장이 되었다. 그는 소모장으로서 아직 의병이 결성되지 않은 청송靑松 관아에 보관된 무기를 거두어 오고자 하였는데, 청송에서는 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의병결성을 서둘렀으니, 그의 청송행은 청송의병 봉기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 뒤 류시연은 권세연 의병장이 사퇴하고 김도화가 안동의진의 대장이 되었을 때, 선봉장이 되어 활약하였다. 4월 2일 일본군의 안동부 방화사건 이후, 흩어진 의병을 모아 의진을 재정비하던 류시연은 남한산성에서 관군에 패해 안동으로 이동하였던 이천의진利川義陣의 김하락金河洛과 연합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며, 안동의진 해산 이후 이강년의진에 참여하여 문경과 제천을 넘나들며 의병항쟁을 계속하였다. 1905년 10월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류시연은 다시 대규모 의진을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1907년 8월 군대해산 이후인 후기의병 때도 역시 서민층을 구성원으로 의진을 형성하여, 안동·청송·진보·영양·영해·영덕지방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당시 류시연의진은 안동지방의 핵심세력으로, 서쪽의 이강년의진, 동쪽의 신돌석의진과 연결하면서 연합작전을 펼쳤다. 이후 그는 1911년 만주로 탈출하여 활약하고, 1912년 무기구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하였다가 영주 소속 반구왜경소盤邱倭警所에 붙잡혀 사형을 언도받고, 1914년 1월 29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 참고자료
「판결문」(1913.9.15, 대구지방법원)
『독립운동사자료집』1·2·3집
『독립운동사』1·3·7권
『한국독립운동사』자료 8
『고등경찰요사』
『적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