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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류시언

작성일 2014.12.17 조회 617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류시언 / 류해동 / 김세진
한자
柳時彦 / 柳海東 / 金世鎭
생존기간
1895.3.15~1945.5.10
출생지
풍천면 구담리
활동분야
임시정부
훈격
애국장(90)

본문

본관은 풍산豊山. 이명은 류해동柳海東·김세진金世鎭. 출신지는 풍서면豊西面 구담리九潭里(현 풍천면 구담리). 류시언은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였다가, 임시정부의 비밀명령을 받고 같은 해 국내로 돌아와 류시준柳時俊·류성우柳性佑와 함께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였다. 1920년 2월 문경군聞慶郡 산북면山北面 서중리書中里의 장수학張守學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로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어 류성우는 체포되어 옥사하였으며, 류시언은 1921년 11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해서 의주와 만주를 거쳐 북경으로 피신한 그는 그곳에서 김정묵金正默·최용덕崔用德 등과 함께 집의학교集義學校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1922년 봄 북경을 떠나 길림으로 돌아온 그는 길림교육회의 운영을 맡아 교육을 진흥시키는 한편, 고려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3년 1월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되자 길림교육회의 대표로 이에 참석한 그는 헌법기초위원·교육위원장에 선임되어 통합된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국민대표회의가 뚜렷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내분이 계속되자 그는 만주로 되돌아가 독자적인 항일투쟁을 모색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24년 10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 참고자료

  《시대일보》1924.6.29

  『고등경찰요사』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

  「범죄인명부」

  「판결문」(1924.8.21, 대구지방법원)

  「판결문」(1924.10.28, 대구지방법원)

 

* 사진출처는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