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건

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류연건

작성일 2014.12.17 조회 446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류연건
한자
柳淵建
생존기간
1892~1951
출생지
임동면 고천리
활동분야
국내항일
훈격
건국포장(03)

본문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일도一島. 출신지는 임동면臨東面 고천리高川里. 류연건은 1915년 이강래李康來 등과 함께 마건충馬建忠이 고종에게 차용한 은銀 20만 냥을 받아, 이 자금으로 중국 간도에 '건북유한공사建北有韓公司'라는 단체를 조직한 뒤, 이 단체를 통해 미국 하와이 주재의 조선인과 연락해 국권회복을 도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국권회복의 방안으로 만국평화회의 때에 원세개遠世凱를 통해 한국의 독립을 제의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이강래는 고종과 의친왕 명의의 위조인僞造印을 만들어 성명서·위임장·유시문을 각각 1통씩 작성하고, 류연건은 이를 가지고 지방으로 내려와 동지를 규합하고자 했다. 이 활동으로 그는 체포되어 1916년 12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류연건은 1920년 8월 22일 창립된 불교청년회에 참여하여 1921년 4월에 열린 노동야학부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1920년 9월 23일 창립된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1년 7월에 열린 제2회 총회에서 간사로 선출되었다. 또한 그는 1925년 3월에 열린 길안청년회 혁신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그 해 11월에는 도산서원 철폐운동 집행위원이 되었다. 이 무렵 그는 조선지광朝鮮之光 안동지국 기자·안동기자단 창립준비위원·안동청년연맹 간부·사상단체 화성회火星會 간부 등을 역임했다. 1925년 예천형평사 습격사건이 일어나자 류연건은 안동에서 대책 강구를 위해 결성된 연합회의에 참석하였으며, 신문에 형평사 사건을 게재하였다. 이 활동으로 형평사를 공격했던 김석희金碩熙(예천청년회 회장)와 장수암張守岩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여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았다. 그 후 1927년 길안청년회 집행위원, 1929년 신간회 안동지회 간사 및 서무장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 건국포장.

 

• 참고자료

  「판결문」(1916.12.28, 경성복심법원)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동아일보》 1920.8.31, 1921.5.1

  《조선일보》 1929.1.29, 8.14

  『김남수선생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