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해

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박진해

작성일 2014.12.17 조회 425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박진해
한자
朴鎭海
생존기간
1894.3.3~1951.12.25
출생지
예안면 주진리
활동분야
3·1운동
훈격
애족장(90)

본문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남포南圃. 출신지는 동후면東後面 주진동舟津洞(현 예안면 주진리). 1919년 3월 17일에 일어난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한 박진해는 김창락金昌洛과 더불어 오후 7시경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돌과 기와를 던져 주재소의 유리창을 깨고 만세를 불렀다. 또한 일본경찰 3명을 포로로 잡아 이들을 무장 해제시킨 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이 활동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1년형이 확정되어 복역하였다.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 참고자료

  「판결문」(1919.5.3, 대구지방법원안동지청)

  「판결문」(1919.5.31, 대구복심법원)

  「판결문」(1919.7.12, 고등법원)

  『독립운동사자료집』 5집

  『독립운동사』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