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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이광민

작성일 2014.12.16 조회 503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이광민 / 이문형 / 이영형
한자
李光民 / 李文衡 / 李永衡
생존기간
1895~1945.10.18
출생지
법흥동
활동분야
만주방면
훈격
독립장(90)

본문

본관은 고성固城. 본명은 이문형李文衡. 이명은·이광민李光珉·光敏·이영형李永衡·영暎·英. 자는 사익士翼. 호는 자화子華.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尙洞(현 법흥동). 이광민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조카이다. 그는 협동학교를 졸업한 후 1911년 백부伯父 이상룡을 따라 만주滿洲로 망명하였고,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16년 봉천성奉天省 통화현通化縣에 있는 동화학교東華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1923년 8월 이광민은 반석현磐石縣에서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여, 1924년 11월 창립총회에서 당무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4년 3월에는 전만통일회의주비회에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대표로 참석하였고, 그 해 11월 24일 정의부正義府가 발족되자 그는 민사부 서무과 주임위원에 선출되었다. 이때 많은 안동 출신 인사들이 정의부에 참여하였는데, 김동삼金東三은 중앙행정위원 겸 외부위원장을, 김원식金元植은 행정원 비서장을, 김응섭金應燮은 중앙심판원장을 각각 맡아 활약하였다. 1926년 1월 정의부正義府 중앙총부에서 내정과 외부조직을 확장하려고 만주 각지와 국내에 위원을 파견하여 군인과 군자금을 모집할 때, 이광민은 김세준金世俊·김홍식金鴻植 등과 함께 파견되어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황해도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6년 11월 이광민은 제3회 정의부正義府 중앙의회에서 재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또 그 해 가을에 결성된 조선공산당 남만총국 조직부 간부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1927년 4월 15일 길림 남쪽 영길현永吉縣 신안둔新安屯에서 좌우합작 추진을 위한 유일당촉성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정의부 중앙위원인 이광민은 김동삼·오동진吳東振·김원식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1927년 5월 한족노동당 중앙집행위원이자 조선공산당 남만도 간부인 그는 휴간중인 기관지『농보農報』 를 조선공산당 방침에 따라 5월 1일부터 다시 발행하였다. 1927년 9월에는 조선공산청년회 남만 제1구에서 선전부 간부에 임명되었다. 1928년 5월 전민족유일당촉성회파全民族唯一黨促成會派인 여족공의회麗族公議會의 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며, 1930년 3월 전만한인반제국주의대동맹창립주비회全滿韓人反帝國主義大同盟創立籌備會 결성에 참여하여 김동삼과 함께 집행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묘는 대전현충원에 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

 

• 참고자료

  『백하일기』(김대락)

  『고등경찰요사』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한국독립운동사』 4권

  『국외용의조선인명부』

  『독립운동사』 5권

  《동아일보》1926.2.18, 1927.5.14
 

* 사진출처는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