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

HONORED PATRIOTS

경북의 독립유공자

김원식

작성일 2015.01.05 조회 898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김원식
한자
金元植
생존기간
1889~1940
출생지
안동 서후면 금계리
활동분야
만주방면
훈격
독립장(68)

본문

국가보훈처 제공.


이명 김소창金笑蒼. 자 계서繼緖. 안동 서후면 금계리. 김원식은 1919년에서 1920년 사이 대구지역에서 폭탄구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금지원에 참여하였다가 만주로 망명.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활동하다가 1924년 11월 24일 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이광민李光民 등과 정의부正義府 설립에 참여. 1926년 11월 제3회 중앙회의에서 법무위원, 1928년 내무위원으로 선임. 1924년 11월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 결성에 주역으로 참여, 1926년 11월 26일 중앙집행위원회 간부로 선출. 1926년에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남만도 선전부 간부 선출. 1927~1928년 3부 통합회의에 정의부 대표로 참석하나 그것이 결렬되자 혁신의회革新議會 설립 주도하여 중앙집행위원장 맡음. 1930년 3월 전만한인반제국주의대동맹창립주비회全滿韓人反帝國主義大同盟創立籌備會 결성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에 선출되어 활동. 일제가 만주를 침공하자 중국 본토로 이동. 1932년 4월 13일 상해에 잠입하여 의열단義烈團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 생도를 모집하기 위해 다시 만주로 파견됨. 만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대표하여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 결성에 참여. 1934년 북경에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제2총대 제4대대 육군군관훈련반 제17대(일명 한인특별반韓人特別班) 입교생 모집활동 전개. 만주로 다시 이동하여 활동하다가 1940년 1월 순국.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

 

• 참고자료

  『경사유방』

  『고등경찰요사』

  『기려수필』

  『국외용의조선인명부』

  『한국독립운동사』

  『한국독립사』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4집

  「임시정부의정원문서」

  『독립운동사』 4권‧5권

  《동아일보》(1927.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