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이만도
- 성명
- 이만도
- 한자
- 李晩燾
- 생존기간
- 1842.1.28~1910.10.10
- 출생지
- 도산면 토계리
- 활동분야
- 자정순국
- 훈격
- 독립장(62)
본문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관필觀必. 호는 향산響山. 출신지는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하계).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안동에 전해지게 되면서 의병을 일으킬 움직임이 일어났다. 안동에서 의병봉기를 촉구하는 첫 통문은 선성(宣城: 예안)에서 나왔는데, 1896년 1월 13일(음 1895.11.29) 이만응李晩鷹·금봉술琴鳳述·목사牧使 이만윤李晩胤을 비롯한 223명의 이름으로 작성되었다. 이 통문을 바탕으로 하여 향산 이만도는 대장이 되고, 이중린李中麟을 부장 또는 중군으로 삼아 선성의진을 조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그는 아들 중업中業을 시켜 이에 항거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 1910년 일본에 의해서 나라가 멸망하자 그는 단식을 시작하였다. 처음 재산 묘막에서 단식에 들어갔다가 동생 이만규李晩煃, 아들 이중업, 종손 이강호李綱鎬의 간청으로 종가인 율리栗里 만화공晩花公 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후에도 단식을 멈추지 않자 주위 사람들이 그의 단식 사실을 친인척에게 알리고, 집안사람들이 함께 단식을 해도 그의 엄중한 뜻을 굽힐 수 없었다. 일본경찰이 와서 강제로 미움을 떠먹이려 하였으나, 그는 일본경찰들에게 “누가 감히 나를 회유하고 협박하느냐”라고 호통을 쳤다. 1910년 10월 10일(음 9.8) 단식 24일만에 순국하였다. 묘는 봉화군 재산에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 참고자료
『기려수필』
『한국독립운동사』
『한국독립사』 하권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독립운동사자료집』 2집
『독립운동사』 1·7·10권
『거룩한 순국지사 향산 이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