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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이병희

작성일 2014.12.16 조회 497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이병희
한자
李丙禧
생존기간
1918.1.14~2012.8.2
출생지
예안면 부포리
활동분야
국내항일
훈격
애족장(96)

본문

출신지는 예안면禮安面 부포리浮浦里. 이병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의거로 옥고를 치른 이경식李京植의 딸이다. 그녀는 동덕여자보통학교同德女子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33년 5월 서울 종연방적주식회사鍾淵紡績株式會社의 여공으로 근무하며 항일투쟁에 나섰다. 그리하여 1936년 직장 동료인 김희성金熙星·박인선朴仁善 등과 여성동지들을 규합하여 노동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녀는 이 사건으로 2년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939년 4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1940년 북경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단원 박시목朴時穆·박봉필朴鳳弼 등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았다. 그러던 이병희는 1943년 북경으로 망명 온 이육사李陸史와 독립운동을 협의하던 가운데, 9월에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북경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더불어 이육사도 체포되어 북경감옥에 함께 구금되었다. 그러다 그녀는 1944년 1월 16일 이육사가 옥중 순국하자,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품을 정리하여 국내의 유족에게 전달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

 

• 참고자료

  「판결문」(1938.5.21, 경성지방법원)

  「판결문」(1939.4.14, 경성지방법원)

  「신원카드」

  『동아일보』1938.5.24

  『새로 쓰는 이육사 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