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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이운형

작성일 2014.12.16 조회 510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이운형
한자
李運衡
생존기간
1892.2.24~1972.3.7
출생지
영양 석보면 포산리
활동분야
만주방면
훈격
애족장(90)

본문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중약重若. 호는 백광白光.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법흥동法興洞(현 법흥동). 이운형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조카이다. 그는 1907년에 개교한 안동 협동학교協東學校를 1기로 졸업한 후, 1911년 이상룡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김동삼金東三 ·이청천李靑天 등과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19년 2월경 국내로 돌아와 3월 1일 탑골공원塔洞公園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그 후 다시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결성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는 서로군정서의 비밀특파원으로 국내를 출입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4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1919년 11월 황종화黃鍾和·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등과 함께 서울 권농동權農洞 남효원南孝元의 집에서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진 후 임시정부臨時政府 요원 강태동姜泰東으로부터 독립문서를 받아, 1920년 3월 대구로 내려가 그것을 최익무崔翼武에게 건네주고, 대구일대에서 배포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 참고자료

  「판결문」(1919.7.4, 경성복심법원)

  「판결문」(1920.10.29, 경성지방법원)

  「신원카드」

  『고등경찰요사』

  『조선독립운동사』 1권

  『독립운동사자료집』 5·9·13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