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이원혁
- 성명
- 이원혁
- 한자
- 李源赫
- 생존기간
- 1890.9.18~1968.11.7
- 출생지
- 예안면 부포리
- 활동분야
- 국내항일
- 훈격
- 애족장(96)
본문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백헌李伯瀗). 호는 혜전蕙田. 출신지는 예안면禮安面 부포동浮浦洞 430번지(현 예안면 부포리). 이원혁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1920년 6월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그는 1922년 도쿄[東京]로 건너가 일청영어학교日淸英語學校에 입학하였으나, 곧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그 후 시대일보사를 경영하고, 《조선지광》잡지를 간행하였다. 1927년 2월 15일 좌우합작에 의한 국내 민족협동전선의 최고기관으로 신간회가 창립되자, 이원혁은 신간회 본부와 신간회 서울지회, 그리고 신간회 안동지회 등에서 간사·선전부 총무간사·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1929년 7월 23일에 열린 제1회 집행위원회에서는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의거가 일어나자 이원혁은 동료들과 함께 검거된 학생 전원 석방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작성하여 신간회 중앙 본부와 연합으로 각 언론신문사에 보낼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 해 12월 13일 권동진權東鎭·허헌許憲·홍명희洪命熹 등 10명과 함께 광주학생사건에 대한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활동으로 체포되어 1931년 4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4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
• 참고자료
「신원카드」
「판결문」(1920.6.4, 대구지방법원)
『기려수필』,「신분장지문원지」
「판결문」(1931.4.24 경성지방법원)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6
『독립운동사자료집』 13·14집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독립운동사』 9·10권
《동아일보》1927.12.18, 1929.12.13, 12.28 1930.6.10, 8.26, 9.10, 1931.2.14, 4.17, 5.18 5.19, 1932.1.23, 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