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현

HONORED PATRIOTS

경북의 독립유공자

남자현

작성일 2014.12.30 조회 660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남자현
한자
南慈賢
생존기간
1872 ~ 1933
출생지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활동분야
만주방면
훈격
대통령장(1962)

본문


영양 석보면 지경리. 남자현은 만 46세인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만주로 망명. 1920년대 중반까지 교회를 설립하고 여자교육회를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 전개. 1927년 ‘길림사건’을 계기로 의열투쟁으로 운동노선 변경. 일본의 기만술책에 따라 중국군이 안창호安昌浩와 김동삼金東三을 비롯한 독립운동 대표 인사들이 붙잡았던 ‘길림사건’이 터지자 이를 해결하는 데 앞장섬. 1927년 4월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서울로 잠입했지만 실패. 1931년 10월 하얼빈총영사관에 갇혀있는 김동삼 구출 활동 전개. 1932년 9월에는 국제연맹 조사단에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고 쓴 혈서 전달을 추진하였으나 실패. 1933년 1월 다시 만주국 주재 일본 전권대사를 처단하려고 하였으나 계획이 드러나면서 붙잡힘.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6개월의 혹형에 시달리다가 단식투쟁 끝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순국. 1962년 대통령장.

 

• 참고자료

  ≪조선중앙일보≫(1933.8.26)

  ≪국민보≫(1959.5.20)

  『영양의 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