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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이육사

작성일 2014.12.16 조회 646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이육사
한자
李陸史
생존기간
1904.5.18~1944.1.16
출생지
도산면 원천리
활동분야
의열투쟁
훈격
애국장(90)

본문

본관은 진성眞城. 본명은 원록源祿·원삼源三. 필명은 이활李活 ·이육사二六四·육사戮史·육사肉瀉·육사陸史. 자는 태경台卿. 출신지는 도산면陶山面 원촌동遠村洞 881번지(현 도산면 원촌리). 1916년 조부 이중직李中稙이 초대교장으로 재직하던 보문의숙寶文義塾에서 수학한 후, 1919년 도산공립보통학교(보문의숙을 공립으로 개편)를 거쳐, 1924년 4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25년 1월에 귀국하여, 대구 조양회관을 중심으로 이정기·조재만 등과 함께 문화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26년 베이징에서 활동하던 이정기로부터 북경 중심의 민족운동에 관한 상황을 전해 듣고, 베이징으로 다시 유학을 떠나, 1926년 중국中國대학 상과에서 수학하였다. 1927년 여름에 귀국하였으나, 장진홍의거(10월 18일)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1929년 5월 출옥한 그는 중외일보中外日報 기자를 역임하며, 1930년 1월 3일 첫 시詩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는 등 문학활동을 하였다. 1931년 1월에 대구격문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3월에 석방되었다. 1932년 중국으로 가서 10월 10일 남경 근교 탕산에서 문을 연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 1기생 학원學員으로 입교하였다. 1933년 4월 20일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한 후 그 해 7월에 서울로 잠입하였다. 1934년 3월 20일 군사간부학교 출신이란 것이 드러나 구속되었으나, 6월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 그는 문예활동에 전념하였다. 1943년 4월, 다시 베이징으로 간 그는 같은 해 7월 모친과 맏형 소상에 참여하기 위해 귀국하였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었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북경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묘는 고향마을 원촌 뒷산에 있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 참고자료

  「신원카드」

  『독립운동사』 8권

  『새로 쓰는 이육사 평전』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 30·3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