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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이준태

작성일 2014.12.16 조회 495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이준태 / 권철 / 권혁
한자
李準泰 / 權哲 / 權赫
생존기간
1892.12.29~미상
출생지
풍산읍 상리리
활동분야
국내항일

본문

본관은 예안禮安. 이명은 권철權哲·권혁權赫. 호는 일봉一烽. 출신지는 풍산면豊山面 상리동上里洞 364번지(현 풍산읍 상리리). 이준태는 1909년 12월에 안동금곡측량학교를 졸업하고, 이 당시 설립된 교남교육회 안동지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16년까지 조선총독부임시토지조사국 측량기사로 지냈다. 그러다가 1920년 무렵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북교통부장으로 임명되어 국내로 파견된 같은 고향 출신 안상길安相吉, 그리고 김재봉金在鳳과 서울에서 만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모집활동에 관여했다. 이후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한 이준태는 1922년 1월 무산자동지회를 발기했고, 무산자동맹회·신사상연구회·화요회·신흥청년동맹·정우회正友會 등 각 단체의 간부와 불꽃사[火花社]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1923년 3월 개최된 전조선청년당대회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였으며, 이 무렵 경성고무공장 여공들의 임금투쟁 사실을 일반에게 알리려고 노동연맹회 내에서 경성고무 여공 동맹파업에 대한 전말이라는 보도문서를 작성하여 노동단체에 알렸다. 이로 인해 그는 출판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에 처해졌다. 또한 그는 꼬르뷰로(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부 결성에 참가하였으며, 1923년 11월 권오설權五卨 함께 풍산소작인회豊山小作人會 조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사상단체인 화성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2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에 안동군 대표로 참가하여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4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후보로 선출되었고, 10월 조선노농총동맹 야체이카, 노농부 쁘락션에 배속되었다. 12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 이후 당 중앙집행위원으로 보선補選되어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비서부 위원으로서 당 업무를 담당했다. 1926년 5월 조선공산당 교섭대표자로 선임되어, 고려공산동맹 대표자 이정윤李廷允·이영李英과 함께 양 단체의 통합문제를 협의했다. 그러나 6월 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일본경찰에 검거되었다. 검거 후 일본경찰의 고문행위를 폭로하기 위해 검거된 사람들과 함께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을 경성지법 검사국에 고소했다. 1928년 2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12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안동군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검사위원이 되었다.

 

• 참고자료

  「신원카드」

  『고등경찰요사』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교남교육회잡지(회원명부)』

  『잊혀진 사회주의운동가 이준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