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연

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권세연

작성일 2014.12.19 조회 578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권세연
한자
權世淵
생존기간
1836.1.19~1899.12.10
출생지
봉화 봉화읍 유곡리
활동분야
의병항쟁
훈격
애국장(90)

본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祖源. 호는 담와澹窩·성대星臺. 출신지는 봉화奉化 유곡리酉谷里(닭실마을). 1895년 말부터 1896년 초에 걸쳐 의병이 전국 도처에서 일어났다. 안동의병도 1895년 12월 초에 시작되었으며,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그 계기가 되었다. 1895년 11월 15일(양 1895.12.30)에 내려진 단발령이 안동부에 문서로 도착한 것은 12일이 지난 1896년 1월 11일(음 1895.11. 27)이었다. 단발령 소식이 안동에 전해지자 안동지역 유림 대표들은 봉정사鳳停寺에 모여 거병 문제를 논의하였다. 권세연은 1월 20일 아침, 안동부 삼우당三隅堂 앞뜰에서 석호石湖 류도성柳道性·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세산洗山 류지호柳止鎬·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류지영柳芝榮 등 유림 대표들에 의해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권세연은 의병 본부를 향교에 차려두고 인근지역에 의병 동참을 촉구하는 격문 「경상도안동창의대장 권세연격慶尙道安東倡義大將 權世淵檄」을 발표하였다. 1월 24일 관찰사 김석중이 도망감에 따라 권세연은 손쉽게 안동부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월 29일, 도망갔던 김석중이 예천에서 반격을 준비하여 안동부를 향해 밀고 들어왔다. 권세연은 김석중을 막아내느라 전투를 벌였지만 패하고 말았다. 권세연은 일단 성을 버리고 후퇴해야 했지만 곧 반격 준비를 갖추었다. 예안에서 이중린李中麟이 이끄는 의진이 청량산에서 편성되었고, 예천에서도 박주대朴周大를 이어 박주상朴周庠이 의진을 맡으면서 안동을 중심으로 반격 대열이 형성되었다. 안동의진이 주변지역 의진들과 연합하여 반격을 준비하자, 관찰사 김석중은 형세가 불리함을 알고 도망가다가 2월 25일 문경에서 거의한 이강년의진에게 붙잡혀 문경의 농암장터(현 문경시 가은면 농암리)에서 처형되었다. 안동의병장 권세연은 김석중이 처형되던 2월 25일에 안동의병을 이끌고 안동부에 무혈입성하고, 향교에 본부를 차린 후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진영을 정비하였다. 안동부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 권세연은 3월 7일 포砲를 중심으로 하는 전투적인 편제로 지휘부를 편성하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는 한 달여 전에 있었던 패배를 자책하며 의병장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 참고자료

  『을미의병일기』(이긍연)

  「안동격문」

  「창의격문」

  『매천야록』

  『독립운동사』 1·8권

  『독립운동사자료집』 1·2·3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