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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D PATRIOTS

안동의 독립유공자

권오직

작성일 2014.12.19 조회 612 작성자 학예연구부
성명
권오직 / 권선득 / 남병철 / 보스또꼬프
한자
權五稷 / 權善得 / 南秉喆 / Boctokob
생존기간
1906.3.6~미상
출생지
풍천면 가곡리
활동분야
국내항일

본문

본관은 안동安東. 이명은 권선득權善得·남병철南秉喆·보스또꼬프Boctokob·행전오직幸田五稷. 자는 원회元會. 호는 일파一波. 출신지는 풍서면豊西面 가곡리佳谷里현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 권오설의 동생으로서 1923년부터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1924년 2월에 신흥청년동맹과 혁청단,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참여하였다. 이 무렵 형 권오설의 추천으로 안상훈安相勳(안동 와룡면 출신)과 함께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29년 3월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8월 국제공산청년동맹國際共産靑年同盟으로부터 고려공산당청년회高麗共産黨靑年會를 재조직하라는 지시를 받고 9월과 10월 무렵에 귀국하였다. 1929년 11월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朝鮮共産黨組織準備委員會를 결성하고 선전부 책임자가 되었다. 1930년 1월에 조선공산당 경성지구조직위원회를 결성하고 2월에 3·1운동 11주년 기념일을 맞아, 때마침 광주학생운동으로 고조된 반일감정을 격발시키기 위해 전국의 청년동맹·농민조합·노동단체에 반일격문을 배포하였다. 이 활동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1년 10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0년 12월 또다시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어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해방을 맞아 출옥하였다. 1945년 9월 정치국원, 기관지《해방일보》의 사장이 되었고, 조선인민공화국 후보위원이 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참가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조선공산당 중앙 및 지방동지 연석간담회에 참석하였다. 1946년 5월에 정판사精版社위조지폐 사건으로 지명수배를 받자 38선 이북으로 피신하여,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南朝鮮人民代表者大會에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0년 2월부터 1952년 1월까지 헝가리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사로 활동하였다. 그 해 3월 중국주재 대사로 부임했으나, 1953년 8월 소환되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그 후 반당·반국가 파괴분자라는 이유로 숙청되어 평안북도 삭주의 농장으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 참고자료

  「판결문」(1942.5.31, 경성지방법원)

  「신원카드」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조선일보》1930.4.7·19, 6.13, 1931.2.1, 5.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