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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운동가 ’15. 9월의 독립운동가 김봉식
2015-09-03 09:17:47
학예연구부 한준호 <> 조회수 1143

 

 

‘15. 9월의 독립운동가

한국광복군 여성대원 김봉식金鳳植

 

□ 공훈개요

o 성 명 : 김봉식(金鳳植)

o 생몰연월일 : 1915~1969

o 주요 공적

∙ 1915년 경주 출생

∙ 1940년 2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입대

∙ 1941년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서 활동

∙ 1942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원으로 활동

∙ 1945년 광복 때까지 광복군으로 활약

∙ 1969년 사망

o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1990년)

 

 

□ 공훈설명

 

1. 한국광복군과 경북 사람

 

중국관내에서 경북인들이 펼친 독립운동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 한국광복군 활동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일전쟁 이후 군대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 결실이 바로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이었다. 한국광복군은 초기에 충칭에 위치한 총사령부 외에 시안西安의 제1지대(군사특파단)와 수원성 빠오터우包頭의 제2지대, 안훼이성 푸이양阜陽의 제3지대, 그리고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5지대로 편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42년 7월 조선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가 합류하면서, 조선의용대는 제1지대로, 기존의 1․2․5지대를 합쳐 제2지대로 각각 편성하였고, 1945년 초에 안훼이성 푸이양에 제3지대를 두었다. 그밖에도 한국광복군에는 9전구공작대와 3전구공작대, 충칭 교외에 임시편성부대로 토교대土橋隊가 있었다.

한국광복군은 일본군에 소속된 한인 병사와 적 후방의 한인 청년을 포섭하는 초모공작招募工作과 이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 적군에 대한 정보수집과 교란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국광복군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연합군과 공동작전을 펼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인도․버마전선에 인면전구印緬戰區 공작대를 파견하여 영국군과 공동작전을 벌였다. 그리고 미국 전략정보국(OSS; CIA 전신)과 연합하여 국내진입을 위한 초급장교를 육성하였다. 전략정보국은 한반도에 대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한인 청년을 잠수함이나 항공기로 국내에 투입시키고자 계획하였다. 그래서 제2지대 1기생이 5월부터 전략정보국의 교육을 받고 8월 4일에 수료한 뒤, 8월 7일 국내진입이라는 공동작전이 김구와 중국전구 OSS사령관 도노반(William B. Donovan) 장군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러나 출발 직전에 일본의 항복소식이 전해져 광복군은 실전에 투입되지 못하였고, 제3지대에서 실시되던 교육도 중단되고 말았다.

이 당시 연합국은 비록 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하지 않았지만, 광복군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특히 미국 전략정보국이 광복군 일부를 한반도 진입작전의 핵심이 되도록 훈련시킨 이유는 광복군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광복군의 규모는 대개 70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장교가 중심이 된 특수부대 성격을 가졌다. 그 가운데 경북 사람들의 몫은 대단히 큰 편이었다. 경북 출신으로 광복군에 관련된 인물은 대개 80명 정도나 되기 때문이다. 광복군 전체 인원의 10% 정도 되는 수치이므로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핵심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두드러지는 사실이다. 이것은 삼남지역이 대체로 비슷한 현상인데, 임시정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역적인 특성 탓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한국광복군 창설 단계에서부터 참가한 인물은 적은 편이고, 전쟁과정에서 한국광복군으로 대거 넘어간 것으로 정리된다.

경북 인물들을 보면, 한국광복군이 되기 전에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한 경우가 가장 많다. 확인되는 사람만으로도 30명을 넘는다. 또 중국군이나 중국유격대에 들어가서 활동하다가 한국광복군으로 넘어온 인물도 여럿이다. 또한 초모공작에 접선이 되어 전선을 넘어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이 된 인물도 눈에 띈다. 한편 이들이 펼친 활동으로는 초모공작이 가장 많았다. 여기에 나섰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목숨을 잃거나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돌아온 인물도 여럿이다.

 

 

2. 경주출신 여성대원 김봉식(1915~1969)

 

경북출신 여성 대원으로는 경주출신 김봉석과 상주출신 전월순 등 두 사람이 알려진다. 민영숙도 있지만 서울 종로 출신으로 경북으로 출가하여 본적지가 상주로 기록된 인물이다.

김봉식은 김봉석金鳳石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경주 강서면江西面 노당리老堂里 379번지 출신인데, 언제 중국으로 망명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그의 자취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1940년 2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한 사실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39년 11월 충칭에서 아나키스트 청년들이 주도한 항일 군사 조직이었다. 중일전쟁 때문에 내륙 깊숙하게 이동하던 끝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침내 충칭 바로 아래에 있는 치장綦江에 도착하였고, 여기에 30명 넘는 아나키스트 청년들도 집결하였다. 이들은 군사조직을 만들자고 결의하고, 김구에게 “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전방으로 나가 활동하겠다.”고 말하면서 승인을 요구하였다. 전선이 형성된 곳으로 가서 그 후방으로 침투하여 한국 청년들을 포섭해서 군사 자원으로 삼아 군대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마침내 김구로부터 허락을 받은 나월환ㆍ김동수ㆍ박기성 등은 시안西安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시안에서 중국 제34집단군 후종난胡宗南 부대의 지원 아래 활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김봉식이 한국청년공작대에 들어간 1940년 2월은 바로 이 무렵이다. 이들이 펼친 초기 활동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이 초모활동招募活動이다. 이것은 중국군과 일본군이 맞서고 있는 전선을 넘어가서 일본군 후방에 움직이고 있던 한국 청년들을 설득하여 데리고 오는 작전이었다. 그 당시 전선 후방에는 휴가나 외박을 나오는 일본군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한국인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청년들을 포섭하기도 하고, 또 일본군 가운데 한국인 출신들을 찾아 설득하기도 했다. 목숨을 건 활동이 아닐 수 없었다. 김봉식이 활약하던 1940년은 그 임무가 가장 핵심이었고, 그도 여기에 참가했을 것은 당연하다.

초모활동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군 통역인 이도순李道淳과 사진관을 경영하던 문응국文應國 등을 비롯하여 1940년 말에 이르러 1백 명이 넘는 한인 청년들을 확보하였다. 마침내 시안에 한국청년훈련반韓國靑年訓練班이 설치되고, 이들을 군사간부로 양성해 나갔다. 이어서 1941년 1월 1일, 신년을 맞아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하였다. 이보다 석 달 앞서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이 창설되고, 그 사령부가 시안으로 이동하여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바로 곁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서 조성환 군무부장이 직접 시안에 도착하여 “혁명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한국광복군 제5지대가 된 것이다.

5지대는 1942년 5월에 한국광복군 제2지대(지대장 이범석)로 편성되었다. 한국광복군에 참가하지 않고 있던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으로 합류하여 신편 제1지대가 되자, 시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요원들과 제5지대를 묶어 신편 제2지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김봉식은 제2지대 제2구대 소속으로 편제되었다.

아쉬운 점은 김봉식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시안에서 활동하던 초기의 인물이어서, 한국광복청년공작대의 초기 활동부터 참가하여 초모공작에 나섰을 것이라는 점, 그러한 사실로 보아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끝으로 한국광복군 제5지대를 거쳐 신편 제2지대 제2구대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 등이다. 몇 명 되지 않은 여성대원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의 존재가치는 결코 낮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담당부서 및 담당자:학예연구부 한준호/이메일:pantagom@hanmail.net/연락처:054-823-1555(FAX.054-823-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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