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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운동가 ’14. 7월의 독립운동가 채기중
2014-11-21 17:07:04
학예연구부 한준호 <> 조회수 2115

□ 공훈개요
o 성      명 : 채기중(蔡基中)
o 생몰연월일 : 1873. 7. 7(음)~1921. 7. 9
o 주요  공적
   ∙1913년 광복단 결성
   ∙1915년 대한광복회 결성
   ∙1917년 친일파 장승원 처단
   ∙1920년 사형 선고받음
   ∙1921년 순국
o 훈      격
   ∙건국훈장 독립장(1963년)

□ 공훈설명

1. 광복단을 조직하다
1910년대 독립운동은 국외에서 전개된 독립운동기지 건설운동과 국내에서 펼쳐진 비밀단체의 독립운동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국내 비밀단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활동이 활발했던 단체가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였다. 이 단체의 결성과 활동을 주도했던 인물이 채기중 이었다.
채기중은 1873년 경상북도 함창군(咸昌郡) 이안면(利安面)에서 채헌락(蔡獻洛)과 곡부공씨(曲阜孔氏)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인천이며, 자는 극오(極五), 호는 소몽(素夢)이다. 함창과 주변 지역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일본군의 주요 주둔지였고, 이후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역사적 현장이었다. 그는 일제의 침략과 만행, 이를 막고 국권을 회복하려던 의병전쟁을 목격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 비록 그는 구국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에는 앞으로 펼쳐나갈 구국운동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한국이 사실상 일제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자, 긴 침묵을 깨고 구국운동을 펼치기 위해 이듬해 풍기로 이주하였다. 풍기는 정감록(鄭鑑錄)에 십승지지(十勝之地)로 알려진 곳으로,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화를 피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곳이었다. 이들 중에는 의병전쟁을 펼친 후 정체를 감추고 은신하면서 후일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채기중은 1913년 풍기에서 광복단(光復團)의 결성을 주도하면서 독립운동의 전선에 뛰어 들었다. 채기중은 김원식(金元式)·정성산(鄭性山)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표로 하는 비밀단체를 조직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서로의 재산을 모아 광복단 자금으로 사용하고, 전국에서 의병활동을 벌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단원을 모았다. 유창순(庾昌淳)·유장렬(柳璋烈)·한훈(韓焄)·강순필(姜順必)·양제안(梁濟安)·김병열(金炳烈)·정만교(鄭萬敎)·정진화(鄭鎭華)·장두환(張斗煥) 등이 광복단에 참여하였다. 단원들의 대다수는 의병 출신이었으며, 망국의 현실을 목격하고 독립운동을 모색하던 인물들도 참여하였다.
광복단은 독립군 기지의 건설을 목표로 군자금 확보와 무기 구입의 활동에 나섰다. 채기중의 주도 하에 광복단은 권총과 탄환을 구입하고 친일 부호들의 금고를 털거나 일본인이 경영하던 광산의 광부로 침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만주 등지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을 접촉하여 조직 확대를 시도하면서 독립전쟁을 준비해 나갔다.


2. 대한광복회를 결성하다
채기중은 조직의 외연을 넓히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이기 위해 1915년에 박상진(朴尙鎭) 등과 함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하였다. 대한광복회의 단원은 광복단과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이 중심이었으며, 독립의군부(獨立義軍部)·민단조합(民團組合) 등에서 활동하던 인물들도 참여하였다. 대한광복회는 국권회복의 목표 속에서도 의병과 계몽운동으로 분열되어 있던 양대 계열을 통합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컸다.
대한광복회는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 독립전쟁을 벌여 독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체적인 투쟁 방략으로 군자금 모집·친일부호 처단·무기 구입·독립군 양성으로 정하고 활동을 펼쳤다. 대한광복회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활동할 수 있는 조직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를 위해 경상도·충청도·황해도·전라도 등지에 지부를 설치한 데 이어 만주 길림에도 지부를 설치하였다. 이로써 대한광복회는 경상도는 물론 전국을 넘어 중국 만주로 이어지는 거대한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아울러 원활한 활동을 위해 대구·광주·인천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상업조직으로 위장한 거점들을 설치하였으며, 만주에도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채기중은 경상도지부의 책임을 맡고 경상도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대한광복회의 회원 모집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주도하였다. 특히 1917년 ‘대구권총사건’ 으로 총사령 박상진이 체포된 후에는 대한광복회를 사실상 이끌어갔다.


3. 군자금을 모금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다
대한광복회는 군자금 모집과 의협투쟁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독립전쟁에 필요한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세금 수송의 우편마차와 금광의 현금마차 등을 습격하거나 광산에 잠입하여 군자금 마련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한국인 부호들의 의연금을 바탕으로 군자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전국 각지의 부호들을 조사하여 그들에게 배당금의 통고문을 보내고, 대한광복회원이 찾아가 군자금을 모금하는 방법을 동원하였다.
경상도지부의 책임을 맡은 채기중은 지역의 부호들을 조사하여 국권회복의 당위성과 부호들의 협력을 요청하는 통고문을 대한광복회 명의로 발송하였다. 통고문을 수령한 부호가 협력을 거부할 경우에는 응징할 것이라는 내용의 경고문도 발송하였다. 그는 경상도에서 활동하고 있던 김한종·임세규 등에게 통고문을 수령한 부호를 방문하여 자금을 모집해 오도록 하였다. 채기중은 비록 경상도지부의 책임을 맡고 있었지만 활동범위는 경상도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라도지부에서의 군자금 모금도 담당하여 전라도의 자산가들에게 통고문과 경고문을 발송하였다.
대한광복회의 군자금 모집은 일제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친일 부호들이 외면하여 원활하지 않았다. 대한광복회는 통고문의 효력을 높이고 군자금 모집을 원활히 하기 위해 친일 부호를 처단하는 등 의협투쟁을 전개하였다. 의협투쟁의 대표적인 사례는 경북 칠곡의 장승원(張承遠)과 충청도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의 처단이었다.
채기중은 장승원의 처단을 주도하였다. 장승원은 한말에 평리원장 허위의 도움으로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한 인물이었다. 그 보답으로 허위에게 의병 자금으로 20만원을 헌금하기로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나아가 경상도의 이름난 부호이면서 친일 행각을 벌였고, 소작인들에 대한 착취가 일본인 지주들보다 심하여 지역민의 원성을 샀던 친일부호였다. 이런 이유로 대한광복회는 두 차례나 그의 처단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상태였다. 채기중은 광복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강순필·유창순과 장승원 처단계획을 세우고, 1917년 11월 장승원을 처단하였다. 이 거사는 친일세력들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일제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4.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다
대한광복회는 장승원 처단사건 후 충청도에서 도고면장 박용하를 처단하면서 의협투쟁을 이어나갔다. 의협투쟁은 성과만큼 피해도 막심하였다. 장승원의 처단 이후 일제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고, 1918년 채기중과 박상진을 비롯한 대한광복회의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어 대한광복회는 사실상 와해되었다. 채기중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21년 7월 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그가 활동했던 광복단과 대한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의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독립운동단체였다. 그 명맥은 3·1운동 이후까지 이어져 광복단결사대와 주비단의 활동으로 계승되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참고문헌
조동걸, 「대한광복회 연구」, 《한국사연구》43, 한국사연구회, 1983.
김희주, 『대한광복단의 민족운동연구』, 한국학술정보, 2006.
이성우, 「광복회 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김희곤, 「1910년대 독립운동」, 『경북독립운동사』Ⅱ, 경상북도, 2012.

*담당부서 및 담당자:학예연구부 한준호/이메일:pantagom@hanmail.net/연락처:054-823-1555(FAX.054-823-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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