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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운동가 ’14. 3월의 독립운동가 유인경
2014-11-21 17:05:00
학예연구부 한준호 <> 조회수 1923

 

□ 공훈개요
o 성      명 : 유인경(兪仁卿) 
o 생몰연월일 : 1896. 10.20. ~ 1944.3.2.
o 주요  공적
   ∙1896년 성주에서 출생, 대구로 옮겨 생활 
   ∙1919년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참여, 대구지부장으로 활동  
   ∙1919년 11월 조직이 드러나 체포(26세)
   ∙1919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 선고 
   ∙1921년 9월 만기 출옥 
 ㅇ 훈      격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 공훈설명
ㅇ 개요
본적은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9년 비밀결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거창·밀양·통영을 통괄하는 대구지부장으로 선임되어 조직 확대에 힘쓰는 한편 동년 8월 군자금 100원을 본부에 교부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그러나 그 조직이 드러나 1919년 11월 일경에 체포되어, 1920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나라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 일제강점기 경북여성의 민족운동  

‘페미니즘feminism’ 또는 ‘여권주의女權主義’로 표현되는 여성운동은 종래의 굴레에서 벗어나 여성의 자아해방과 정치·경제·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운동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운동은 일제강점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인 세계여성운동의 흐름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민족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여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여성운동은 민족운동과 그 흐름을 같이한다는 뜻이다. 경북 여성들이 펼친 민족운동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경북지역 여성운동의 본격적인 태동은 국채보상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그 첫 장을 연 것이 1907년 2월 23일 발기한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南一洞佩物廢止婦人會이다. 이어 국채보상탈환회,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 경주 국채보상부인회가, 김산부인회 등이 조직되었다.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의 취지문 「경고 아 부인 동포라」에는 여성의 의식이 ‘가정이라는 울’을 넘어서 ‘국가의 구성원’ 이라는 데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여성의 사회적 존재성을 드러냈으며, 나아가 정치적 평등으로 나아가는 단초를 열었다. 이와 더불어 대구의 앵무, 김천의 남보 등 기생이나 주파酒婆와 같은 개인 의연자도 눈에 띈다.
거족적 민족운동이었던 1919년 3․1운동에도 여성들은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북에서는 남자현南慈賢․김락金洛․윤악이尹岳伊․신분금申分今․임봉선林鳳善․김정희金正希 등이 3․1운동에 나섰다. 이들의 경우 남성, 특히 가족들의 활동에 고무된 측면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영양의 남자현은 1896년 의병항쟁에 나섰던 남편 김영주金永周가 전사하자 ‘남편의 원수 일본’이라는 의식을 키우다가 서울로 올라가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윤악이와 신분금도 남편 주명우와 김태을이 3․1만세에 나섰다가 체포되자, 직접 영덕군 지품면 원전시장에 나가 만세를 불렀다. 대구 신명여학교 교사 임봉선은 학생 50명의 참여를 이끌냈다. 또한 영천의 김정희는 이웃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자극을 받아 혈서를 쓰고 홀로 만세를 고창하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김락은 3․1만세에 참여 했다가 고문을 당해 두 눈을 잃기도 했다. 
3․1운동 직후 여성들은 비밀리에 항일단체를 만들어 독립운동에 나섰다. 경북여성으로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이끌었던 성주출신의 유인경兪仁卿이 눈에 띈다. 또 한편에서는 여전히 전통의 길을 고수한 의부義婦 권성權姓이 있다. 광무황제의 상기가 끝나는 날 충의의 길을 가는 남편 이명우와 함께 음독ㆍ자결하였다. 이는 경북인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들어 다양한 투쟁 주체들이 성장하면서 여성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경북에서는 대구여자청년회(1923), 금릉여성회(1925), 안동여성회(1925) 등 여러 지역에서 여성단체가 조직되었다. 이들 단체는 보수성이 강한 이 지역에서 사회주의 좌표를 가진 여성해방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1927년 들어 여성운동의 통일적 지도기관인 근우회가 결성되자 경북에서도 6개 지역에서 근우회 지회가 설립되었다. 대구ㆍ하양ㆍ군위ㆍ영천ㆍ김천ㆍ영주지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이끌었던 인물이 정칠성丁七星(대구)ㆍ이춘수李春壽(대구)ㆍ백신애白信愛(영천) 등이다. 
이 시기 운동에서 주목할 점은 새로운 여성 지도자의 출현이다. 3․1운동 직후까지 주로 기득권층과 지식층 남성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측면이 강하다면, 이 시기에는 다양한 계층에서 출현하였다. 70세 중반의 나이에 안동 풍산소작인회 집행위원이 된 농민 강경옥姜敬玉과 기생출신으로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이 된 정칠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1930년대 여성운동은 독자적으로 여성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기 보다는 농민․노동․학생 등 각 부문 운동과 연계해서 이루어졌다. 혁명적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운동, 그리고 반제․반전운동 등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안동에 뿌리를 둔 이효정李孝貞과 이병희李丙禧의 노동운동이 눈길을 끈다.    
나라밖에서 투쟁한 여성들도 있다. 만주에서 의별투쟁을 전개한 남자현南慈賢(영양)은 경북을 넘어 한국의 대표적인 항일투쟁가이다. 그 밖에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건너가 여성단체를 이끌었던 이희경(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한 민영숙閔泳淑(성주)ㆍ전월순全月順(상주)ㆍ김봉식金鳳植(경주), 중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김노숙金魯淑(안동)이 있다. 이와 더불어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던 숱한 여성들이 있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사례이다.     
경북지역은 유교적 전통이 뿌리 깊은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직접 독립운동현장에 뛰어든 여성들이 수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꾸준히 ‘민족 문제’를 담지하고 조국 광복에 힘을 보탰으며, 더불어 자신들의 몫을 찾고자 하였다. 

 2.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에서 활약한 유인경(兪仁卿, 1896~1944)  

3ㆍ1운동 직후 여성들은 애국부인회ㆍ부인독립회 등 비밀결사를 국내외에서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아 임정에 보내고, 임정요인의 활동을 지원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여성항일단체는 1919년 9월 정신여학교에서 김마리아를 회장으로 결성된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이다. 이 단체는 독립전쟁에 대비한 결사부와 적십자부를 두고, 대구를 비롯하여 부산ㆍ전주ㆍ진주ㆍ평양ㆍ원산 등 남북한 15개 지역에 지부를 설치하여 2,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한 전국적인 여성 독립운동단체였다.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독립운동사 강의(개정), 한울아카데미, 2009, 162쪽
 여기에 성주 출신의 유인경兪仁卿(1896.10.20~1944.3.2)이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1919년 3∼4월 오현주吳玄洲·오현관吳玄觀·이정숙李貞淑 등이 주도·조직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최숙자崔淑子·김원경金元慶·김희열金熙烈·김희옥金熙玉 등이 중심이 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가 그해 6월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기독교회·학교·병원 등을 이용해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유인경은 거창·밀양·통영을 통괄하는 대구지부장으로 선임되어 조직 확대에 힘쓰는 한편 1919년 8월 군자금 100원을 본부에 교부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9월에 이르러 김마리아金瑪利亞·황애시덕黃愛施德을 중심으로 결사부決死部·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고 항일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청년외교단과 함께 임시정부 국내 연통부聯通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본부와 지부를 통해 대한적십자회 대한총지부의 활동을 수행하였다. 또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6천원의 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그러나 1919년 한 임원의 배신으로 임원과 회원들이 일제히 검거되었다. 이 당시 유인경은 26세의 어머니였다. 이는 만기출옥 당시의 <동아일보> (1921년 9월 20일자) 기사를 통해 확인된다. 
검거된 80명 가운데 김마리아ㆍ유인경 등 9명이 기소되었고, 유인경은 최종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자모의 부음, 3년 만에 愛子
애국부인회사건의 신의경 유인경 18일에 대구 감옥에서 만기출옥
일시 세상의 이목을 놀래이던 애국부인회 사건의 관계로 1년 징역의 선고를 밧고 대구감옥에서 복역 중이던 전 경성정신여학교 교사 신의경(辛義敬)양과 대구의 유인경의 두 여자는 지난 18일 이른 아침에 만기가 되어 출옥하였는데 유인경 여사는 3년 만에 처음으로 감옥이란 문 앞에서 만난 둘째아들을 안고 감개무량한 태도로 인력거 위에 몸을 싣고 남산정 자택으로 가고 신의경은 서울에서 내려온 교회대표, 동창회 대표와 가족들과 함께 덕산정 이자경(李子卿)여사의 댁으로 들어가 안자 인하여 1개월 전에 사랑하는 딸을 옥중에 두고 원한을 품고 이 세상을 떠난 자기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3년 동안의 철창생활을 꿈같이 보내고 만기일의 한 달 전부터 출옥하면 사랑하는 어머니의 품속에도 안길 것이요 여러 친구와 악수도 하야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려니 생각하고 오히려 지나간 고생은 봄눈 녹듯 녹아지고 다만 손가락으로 한시 두시 하루 이틀을 꼽아가면서 만기일만 기다려 출옥하자마자 하늘이 무너질 듯한 어머니의 부음을 들은 신의경양은 그만 실신을 하듯 하였다더라(대구)


 참고 자료 : <판결문>; <중외일보>; 고등경찰요사 195쪽;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22쪽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3쪽;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0쪽;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27쪽;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29·430·432·447쪽.  참고 연구 : 강윤정, 「일제강점기 경북여성의 민족운동」(경북 여성인물 재조명 심포지엄 자료), 경상북도․경북여성정책개발원, 2013; 김은아, 「일제강점기 경북지역 근우회 운동」, 계명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박용옥, 한국독립운동의 역사31, 여성운동, 독립기념관, 2009;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 지음, 우리 여성의 역사, 청년사, 2000;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독립운동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2007.

 

*담당부서 및 담당자:학예연구부 한준호/이메일:pantagom@hanmail.net/연락처:054-823-1555(FAX.054-823-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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